[서안] 마지막 날의 회족거리 어둠 속
아 움직이기 싫다. 그렇게 한 시까지 안에 있었다. 연말과 연초. 힘들었다. 우울하다. 여행 와서도 그 기분은 이어질 뻔 했으나 다행히 친구와 함께 와서 그러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한시도 생각할 시간이 없었으니. 이제 친구도 가버리고 몸은 너무나 지친 상태, 어떻게 남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까? 시장이나 쇼핑이나 박물관. 섬서 박물관은 볼거리가 많아보여 힘내서 갔으나 줄이 길다. 사실 긴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박물관을 또 돌기 보다는 먹을 것이 더 먹고 싶었고 그 결과 또 열심히 먹고 사람들이 지하철을 통해 많이 가던 SAGA 백화점을 갔다.
아시아 제1 에스컬레이터라. 한꺼번에 6층까지 연결하는데 제일 길다는 뜻일까? 중국은 정말 규모부터 차원이 너무 다르다. 그렇게 주의 깊게 볼만한 건 별로 없었는데 모자나 악세사리 일본 제품이 좀 탐났으나 꾹 참고, 다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백화점 앞에 햇빛을. 티라노사우루스가 애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빨강색을 좋아하고 인공적인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 그 놈의 AAAAA 대안탑! 밀려오는 기억들. 여하튼 이렇게 와서 시작은 역시 먹을 것. 인생면 포스팅을 하면서 쉬다가 또다시 회족 거리로 나갔다.
바로 회족사원이 무슨 앨리스 인더 원더랜드 같은 공간이란 소릴 듣고서. 다시 왁자지껄 회족거리로. 어차피 포스팅 할 거지만 좋았다. 세월, 역사, 그 문화를 이어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종교, 삶,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거리. 왜 이런 것을 여행 하면 느끼는 걸까?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 곳에서는 이런 감동을 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파랑새는 바로 내 옆에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파랑새를 못 보고 있는 걸까? 회족사원을 갈만한 길로 가자 나오는데 그 길로 가는 거리가 와우 이것이다!!!! 쇼핑이다!!!!!
특히 들어가고 싶던 곳은 은을 파는 가게. 하지만 돈도 없고. 일단 회족 사원을 가는데 가는 도중 군데군데 나온 샵에 눈이 막 빼앗긴다. 그렇게 좋은 건 아닌데 특히 그림을 그려놨던 가게가 기억에 남는다. 회족사원 바로 앞에도 카페 같은 것, 귀여운 물건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그리고 길을 나서서 그냥 가는대로 가는데 첫날과 달리 인파가 굉장하다. 첫날은 역시 설날이라 그랬던 건가. 그 길을 따라서 얼마나 계속 무언가 사고 싶고 먹고 싶던지. 그러다가 감떡이 먹고 싶은데 한적한 곳은 2위안.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돈은 1.7위안 뿐. 그 0.3이 부족해서 감떡을 못 먹고 자꾸만 눈에 사고 싶은 빗이나 담배 같은 것이 보이자 나는 따슈에에서 길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대로변으로 나왔다. 그리고 ATM 기 발견하자마자 100위안 인출.
100위안 정도는 써줘야지 히히히히. 그리고 열심히 돌아다니려는 찰라, 큰 길로 들어가는데 그 곳은 또 집에 가는 분위기. 그 곳을 지나 커다란 마당으로 그래도 커플이 하나 가고 있는데 난 홀로. 그 곳은 모든 불이 꺼진 상태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좁은 골목이고 너무나 조용하다. 회족사원은 여기에 비하면 사람도 좀 있고 괜찮은 편이다. 덜컥 겁이 난다. 돈도 뽑았는데 이러다가 나 갑자기 무슨 일 생기면 어쩌지? 바로 앞에 두 사람은 커플 처럼 보이고 평범해 보이는데 이 사람들이 가는 길이 정말 평범한 주택가라서 다시 회족 거리의 화려함 속으로 못 돌아가면 어쩌지?
바로 1분 전 그 곳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있고 대로가 나오는데 중간에 쉬고있는 뚝뚝 몇 개를 지나고 나니 길은 너무나도 깜깜하고 불은 켜져 있지 않고 좁은 골목이다.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안전해보인다고 내 감이 말하나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최대한 그들 뒤를 따라간다. 가다가 중간 중간 몇 군데 불켜진 집 뒷문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한 것인가. 나의 집이 아니니까. 화려한 거리 뒤 속 그네들의 장소니까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다. 다행히도 더 가다보니 나왔다. 나왔다. 난 겁이 많다. 안정지향 적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낯섦을 즐긴다. 와, 위험했다. 그런데 어둠이 무섭기 보다는 너무나 고요한 그 적막감이 두려웠다. 적막감 그리고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 왜? 난 여자니까.
이 이야기를 오늘 점심 먹다가 하니까 같이 밥 먹던 동기는 남자는 여행가서 '내가 어떻게 될까? 위험한 상황에 처할까?' 란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항상 할 수 밖에 없던데. 그래서 오늘 든 생각은 역시 주짓수를 배워볼까? 중국 운남성 가기 전에 스쿠터도 배워볼까 생각했는데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운동을 배워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내 몸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고 그 위기감도 느낀 적이 매우 드물다. 응, 드물다.
사람들이 많은 곳, 왁자지껄한 그 곳으로 나오니 참 안심이 된다. 저들 속에서 나는 그냥 한 사람일 뿐이니까. 안전한 인파. 아주 갑작스런 체험. 뒷골목. 내가 남자라면 이런 위기감을 별로 느끼지 않을까? 혼자 아무 곳이나 다닐 수 있을까? 확실히 내가 T 같은 남자이고 그 같은 외형을 가졌다면 아무도 나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겠지. 오로지 '여자'이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주목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시선들, 매우 불편하다. 중국은 그런 곳은 아니다. 이 날, 회족거리 근처 너무나 적막했던 그 뒷골목에서 느낀 감정은 중국이라서 느낀 건 아니다. 유럽 어디서나 느낄 수 있고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을 거다. 다만 익숙하냐, 익숙하지 않냐의 차이점. 여행은 이렇게 인간 생존 본능을 가끔 일깨운다. 그리고 외로움을.
화려한 인파 속으로.
+ 은가게 갔더니만, 이런 진주귀고리 싸구려를. 중국에서 음식만 사먹어서 흥정을 할 일이 없었는데 안 사고 그냥 가려니만 바로 20위안을 깎아주더니 얼마를 원하냐 물어보더군. 다람살라에서 나에게 동거하자 했던 그 청년이 하던 가게가 생각난다.
+ ATM 뽑을 수 있는 그 대로변에 나이트가 많다고 한다. 삐끼같던 청년들.
+ 이러고 양피 먹으러 여기 다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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